1-2. 등산은 어디까지 왔는가

산악연맹 | 2009.09.20 04:12 | 공감 0 | 비공감 0
가. 더 오를 곳이 없다.

알파인 스타일 즉 알프스 식(式)이라는 말은 정작 알프스에서는 쓰지 않으며, 히말라야 같은 고소의 등반에서 비로소 그 가치가 인정된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소수 정예주의가 기본이고, 등반 방식은 속공(速攻)이어야 하기 때문에 으레 물량의 경량화가 따른다. 그래서 천막 없는 설동(雪洞) 작전이 등장하기도 한다.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은 단독과 속공으로 가는 중요한 과정이지만, 단순한 속공과는 엄연히 구별된다. 진정한 의미의 속공의 등반은 고산 등반에서 아주 중요한 전술 개념이다. 일찍이 이반 쉬나드(Ivon Chouinard. 1938~ )는 ‘등산에 있어 속도는 클라이머의 사활을 좌우한다.’고 까지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단순한 속공 등반 기록은 그러한 진정한 알파인 스타일의 속공과는 거리가 멀다. 에베레스트 속공 등반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물론 이때 클라이머가 발휘하는 주력은 놀랍지만, 마(魔)의 길목인 아이스 폴 지대를 루트 공작도 없이 남이 뚫어 놓고 만들어 놓은 길을 뛰어가다시피 한다면, 그러한 에베레스트 등반에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겠는가. 알피니즘의 이와 같은 추세는 결국 알피니즘 자체의 앞날을 예언하기도 한다. 이미 등반의 세계도 갈 때까지 갔다는 이야기며, 등반 형식이나 방법 역시 한계에 이른 셈이다.
1993년은 에베레스트 초등 40주년이 되는 해인데, 이 해 봄철에 에베레스트에는 네팔 쪽으로만 15개 등반대가 몰리고 하루에 40명이 그 정상을 밟았다. 한편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에서도 초등 80주년을 맞아 등반 최적기인 5월 하순에 무려 500명에 달하는 클라이머의 공격을 받았다. 이러한 현상은 고도의 산업화 사회가 출현하면서 고산 등반의 제반 여건이 성숙해진 데 그 원인이 있다. 이렇듯 고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추세는 앞으로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나. 산의 고도와 등산가의 태도

알피니즘이 오늘날처럼 일반화 또 보편화되기 전, 알피니스트들은 준엄한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도전 정신으로 무장하고 행동했다. 그 무렵 대자연은 그들의 외경과 모험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오늘날 사람들은 과학기술 문명의 위력과 혜택 속에서 본래의 자연관에서 멀리 떨어지고 있다. 이것은 알피니즘의 본도 이탈이며 알피니스트의 불행이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진정한 알피니즘과 알피니스트가 존립하려면 보다 올바른 인식과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알피니즘의 세속화와 알피니스트 자신의 타락을 막아야 한다.
여기 ‘고도(Altitude)'와 태도(Attitude)'의 문제가 제기된다. 즉 고산의 높이와 등산가의 마음가짐 사이에 새로운 관계 정립이 요청된 것이다. 등산은 고도를 지향하고 추구함을 본질로 하지만, 이제 더 새록게 오를 곳이 없는 상황에서 알피니스트는 자연적 고도에서 정신적 고도로 그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흔히 등산을 육체적인 힘과 장비 발달에 따른 등반기술에 절대적 비중을 두기 쉬우나 이보다 앞서 등산가의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알피니즘 본연의 정신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약해지고 지금에 와서는 거의 외형만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다. 편의성과 불확실성

현대 알피니즘에서 우려하고 경계햐야 할 문제는 보편화에 따르는 세속화에 있다. 문명이 자연의 베일을 벗기면서 온갖 ‘편의성(Expediency)' 을 제공해 왔고, 알피니즘 세계에 존재하는 위험성과 불안 요소를 제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알피니즘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불확실성(Uncertainty)'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될 때 알피니즘의 세계에 과연 어떤 매력이 있으며,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가.
우리는 이 시점에서 프랭크 스마이스(Frank Smythe, 1900~1949)가 알피니즘의 편의성을, 이반 쉬나드가 불확실성의 문제를 제기했던 것을 다시 주목해야 한다. 스마이스는 일찍이 에베레스트 등반에 인공 산소 사용을 반대하였고, 고산 등반에서의 어려움과 위험함과 싸우는 것이 곧 알피니즘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등산에서 편의성 문제는 비단 인공 산소 사용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각종 장비가 개량되어 사용이 편리해지면서 등산가의 세계가 변질되고 있다. 메스너 역시 이 문제가 바로 산을 작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보고, 장비의 과도한 사용에 반대하였다. 다시 말해 제반 편의성이 알피니즘 정신을 희박하게 하고 약화시키는 것을 염려한 것이다.
한편 불확실성이야말로 등산의 세계를 이루는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인 조건이다. 불확실성은 적어도 알피니즘의 초창기에는 별문제가 아니었지만 정보가 풍부해지면서 미지의 세계는 더 이상 비밀을 감출 수 없게 되었다. 전 세계 오지의 구석구석까지 속속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불확실한 것이 없어지고, 이에 따라 불안도 공포도 사리지고 있으니, 모험을 즐기는 알피니스트가 대자연 속에서의 보람을 찾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라. 등산과 인생

영국의 등산가 조지 휜치(George Finch, 1888~미상)는 ‘등산은 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방법’이라고 했다. 등산은 외형상 의 ․ 식 ․ 주의 이동이며, 내적으로는 그 자체가 인생이다. 높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하여 스스로 노력하며 고생하는 그 과정은 인생과 다름없다.
프랑스의 등산가 샤뗄리우스는 ‘등산은 길이 끝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고 했는데, 여기에 등산만이 가지는 특색과 특권이 있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며 온갖 어려움과 싸우며 이를 극복하는 정신과 행위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등산하는 사람은 많은데 등산 서적을 읽는 사람이 적은 것 또한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데 등산가는 선인들이 간 길을 더듬고, 언제나 추체험(追體驗)해야 한다. 정보의 홍수로 인해 미지의 세계가 없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서적을 통한 선구자와의 교감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1950년 인류 최초로 8,000m의 정상에 오른 프랑스 등산가 모리스 에르조그(Maurice Herzog, 1919~ )가 그의 저서 ‘안나푸르나 등정기’의 결론으로 한 말에서 우리는 등산과 인생의 문제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안나푸르나에 빈손으로 갔지만, 안나푸르나를 오름으로 인생에 새 장을 열었다. 인생에는 또 다른 안나푸르나들이 있다….’
미국의 등산 교본에서 ‘등산가는 산의 자유를 추구하는 자로 대자연의 시민권(Wilderness Citizenship)'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민권에는 특권과 보답도 따르지만 책임과 의무 또한 따른다.’고 했다.
알피니즘이 무엇인가 알려는 자, 그리고 알피니스트가 되려는 자는 남다른 특권과 책임과 의무가 어떤 것인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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