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등산이란 무엇인가

산악연맹 | 2009.09.20 04:11 | 공감 0 | 비공감 0
알파니즘(Alpinism)이라는 말은 스위스를 가운데 두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등 다섯 나라에 걸쳐 있는 유럽 알프스의 고산 지대에 그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다.
불어의 Alpinisme에서 시작하여 영어 Alpinism, 독일어 Alpinismus, 이탈리아어로는 Alpinismo 등으로 불리며, 오늘날 등산을 뜻하는 국제 공통어가 되었다.
또한 등산가를 ‘알피니스트(Alpinist)', 등산학교를 ’알파인 스쿨(Alpine school)' 산악회를 ‘알파인 클럽(Alpine club)', 등산용 지팡이를 독일어로 ’알펜 슈톡(Alpenstock)' 이라고 하는 것도 모두 알파니즘에서 시작된 말이다.
등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히말라야 등산을 ‘히말라야이즘’, 안데스 등산을 ‘안디니즘’ 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알피니즘은 등산의 역사적 기원 때문에 생겨난 말일뿐 ‘알프스 등산이라는 좁은 뜻이 아니라, 널리 일반적인 등산을 뜻한다’고 프랑스의 등산가 뽈 베시에르가 그의 저서 <알피니즘>의 첫 머리에서 밝히고 있다.

가. 알피니즘의 정의

그렇다면 알피니즘, 다시 말해서 등산이란 무엇인가?
등산(登山)은 산을 오른다는 뜻이지만, 원래 서구인의 사고 방식과 행동 양식에서 온 서구적 개념이다. 즉 등산은 알피니즘을 번역해서 만든 말이다.
등산에는 고전적 의미와 현대적 의미가 있는데, 전자는 모험과 도전의 의미가, 후자는 탈출 수단의 의미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등산의 역사에 따른 시대적 배경이 깔려 있으며, 등산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등산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것은 처음에 등산이 어떻게 시작하여, 어떤 과정을 밟아, 지금 어디까지왔는가 하는 이른바 등산의 역사를 대충이라도 훑어볼 때 비로소 그 가닥이 잡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피니즘의 정의는 다음과 같이 요약 할 수 있다. 영국에서 나온 등산백과사전(Encyclopedia of Mountaineering)에는 알피니즘을 ‘눈과 얼음에 덮인 알프스와 같은 고산에서 행하는 등반’으로 풀이하고 있다.

나. 알피니즘의 역사적 기원

1760년 스위스 제네바의 대학 교수인 베네딕트 드 소쉬를가 샤모니에 가서 하늘 높이 솟은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Mont Blanc, 4,807m)을 보고, 정상에 오르는 길을 아는 자에게 상금을 내걸었다.
18세기라면 히말라야는 고사하고 알프스도 미지의 세계였다. 그 무렵 사람들은 몽블랑에 악마가 살고 있고, 눈사태를 일으킨다며 무서워했다. 그 몽블랑이 등정된 것은 그로부터 4 반세기가 지난 뒤였다.
몽블랑의 정복은 미지의 세계, 그 공포와 곤란함에 대한 도전이었다. 여기에는 알프스에 대한 숭고한 등산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이를 일컬어 알피니즘이라고 한 것이다.
등산은 산과 사람의 만남에서 비롯하지만, 사람과 산의 만남이 모두 등산은 아니다. 도를 닦으려 입산하거나 약초를 캐며, 짐승을 잡을 목적으로 산에 가는 것은 등산이 아니다. 승려나 심마니, 사냥꾼이 제 아무리 산을 잘 오른다 해도 우리는 그들을 등산가라고 하지 않는다. 등산은 행위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다. 알피니즘의 세계

알피니즘에는 알피니즘을 실현하기 위한 고유의 특수한 세계가 있다. 그것은 무형 또는 유형의 세계이며 일정한 테두리가 없는 것이다. 알피니즘의 무대는 대자연이다. 이 자연은 고산과 칼날 능선, 깎아지른 암벽, 눈과 얼음 그리고 넓은 공간과 허공 등으로 펼쳐지는 별세계이다.
이러한 세계에서 장시간에 걸쳐 극한적으로 벌어지는 알피니즘 활동은 한마디로 정신적이고 육체적이다. 심한 육체적 노력을 넘어서 정신적인 것을 얻는 것이 등산의 특권이고 본질이다.
등산은 지식욕과 탐험욕 그리고 정복욕의 소산이며, 이때 알피니스트는 진정 자기를 알고 자기를 지배하며 자기를 이긴다.
알피니즘에는 또한 알피니즘만이 가지는 특수성이 있다. 그것은 일반 스포츠와 비교할 때 더욱 확실해진다. 일반 스포츠에는 심판과 규칙과 승부와 관객이 있으나 등산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
나아가 가장 중요한 것은 프랑스 등산가 리오넬 테레이(L.Terry, 1921~1965)가 말한 ‘무상(無償)의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요컨대 등산은 자기 과시가 아니며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인간의 의식과 행동이며, 자연에 대한 가장 순수하고 가장 가혹하며 가장 신중한 도전이다.

라. 알피니즘 정신과 형식의 변천

몽블랑이 초등되던 1768년 8월 7일에, 서구 근대화의 전기를 마련한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완성되었다. 이를 두고 등산과 서구 근대화를 동일하게 ‘인간의 힘의 발로’로 보는 학자가 있다. 이처럼 서구 근대화와 출발점이 같은 등산은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등산은 250년 가까운 시간의 흐름 속에 그 역사를 기록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안내 등반에서 안내자 없는 등반으로
몽블랑이 등정되자, 곧이어 만년설에 덮인 3~4,000m의 알프스 고봉들에 대한 도전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사람들은 지리도 잘 모르고 힘과 능력도 부족해서 그 지역 사람을 안내인으로 고용하고 그 뒤를 따라(Guided)가다가, 점차 안내자가 없는 산행(Guideless Climbing)을 하게 되었다.

등정주의
이 무렵 그들의 산행 방식은 비교적 등반하기 수월한 산등성을 따라 정상에 오르는 산행이었다. 이런 형식을 등정주의(Peak Hunting)라고 한다.
이런 등정주의 산행 방식은 알프스 4,000m 급의 마지막 봉인 마터호른(Matterhorn, 4,478m)의 초등정(1865년)까지 계속되었다.

등로주의와 머메리즘
산등성을 따라 정상에 오르던 등반의 한 시대가 지나면서, 이번에는 산 허리나 가파른 절벽에 길을 내며 오르는 모험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길을 ‘Variation Route'라 불렀다. 또한 난이도가 점차 높아짐에 따라 자연히 보조 수단이 필요하게 되어 ‘인공 등반(Artificial Climbing)' 이 등장하게 되었다. 물론 당시의 보조 수단이라야 극히 초보적이고 소박한 것으로 나무 쐐기와 줄사다리 정도였다. 이런 험로 개척을 주장하고 나선 등산가가 바로 '머메리(Albert F. Mummery, 1855~1895)' 였다. 그리하여 그가 주창한 ’More Difficult Variation Route'의 산행 형식이 등정주의에 대한 등로주의로 그의 이름을 따서 머메리즘(Mummerism)이라고 하였다.

등산 무대의 변천
알프스의 4,000m 급 고봉들이 모두 등정되자, 보다 높고 어려운 대상을 찾아 나선 머메리는 19세기 말 히말라야 8,000m급 봉인 낭가파르밧(Nanga Parbat, 8,126m)에 도전하였고, 등반 도중 실종되고 말았다. 등산 역사에 있어서 순수 등반 대상지로 히말라야의 문을 두드린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낭가파르밧에 다시 등반대가 간 것은 그로부터 30년 뒤의 일이지만, 1953년에 가서야 이 고봉이 초등된 것을 보면 머메리의 히말라야 진출이 얼마나 앞서 있었던가를 잘 알 수 있다.

벽 등반 시대
등산무대가 알프스에서 히말라야로 옮겨가고, 에베레스트와 낭가 파르밧이 도전을 받고 있던 1930년대, 알프스에서는 아이거와 그랑드죠라스 그리고 마터호른의 3대 북벽이 전위적 클라이머들의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이 알프스 3대 북벽 등반은 등로주의의 절정이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난이도가 높은 동계 ‧ 직등 ‧ 단독 ‧ 속공 등반 형식으로 발전하면서 역사의 장을 새롭게 기록하게 된다.

대원정 시대
머메리의 낭가파르밧 도전 후 반세기가 지나 1950년에 최초로 8,000m 봉 안나푸르나가 초등되었고, 이후 1964년까지 히말라야의 최고봉 급 14봉이 모두 등정되었다.
이때의 히말라야 원정에 소요된 기간 ‧ 인원 ‧ 물자 ‧ 자금 등은 알프스 등반과 비교할 수 없는 큰 규모여서 ‘대원정’이라 부른다. 이런 형식은 1977년 한국 팀의 에베레스트 원정까지 4반세기가 넘도록 지속되었다.

무산소 ‧ 단독 ‧ 연속 등반
세계 등반사에서 일대 전환기라면 1978년을 꼽을 수 있다.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 1944~)가 에베레스트를 산소통 없이 오르고, 3개월 뒤 낭가파르밧을 단독으로 등정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로써 등산계의 세기적 과제로 남아 있던 8,000m에서 무산소 ‧ 단독 ‧ 연속 등반이 모두 해결되어 알피니즘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알파인 스타일과 속공
알파인 스타일과 속공 역시 히말라야 등반의 새로운 장을 연 계기였다. 말 그대로 ‘알프스 식’이라는 뜻인 알파인 스타일은 히말라야의 8,000m 고소를 높이가 그 반밖에 안 되는 알프스에서 통하는 방식과 기술로 등반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극지법으로 오르면서 곳곳에 물자를 저장하던 전통방식에서 벗어나, 고도 순응만 끝나면 곧바로 정상을 향해 전진하는 등반 방식이다.
한편 속공으로 에베레스트를 24시간 안에 왕복하겠다고 오언하던 클라이머가 있었는데, 그는 결국 그 시간에 정상끼지 오르는 데 그치는 기록을 세웠다. 물론 기록은 계속 경신 되기 마련이다.

※ 극지법(極地法) : 히말라야 같은 고산에서 고도차 대략 500m 이상을 두고 캠프를 전진시키는 등반 전술로 본래 남극, 북극 탐험대가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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